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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이 뭔지도 모르고 대신 갚아준 내 첫사랑의 빚

by 정보박스100 2025.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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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때때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것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떠안는다. 하지만 사랑은 투자였을까, 대출이었을까. 나는 그때, 그녀의 채무를 대신 갚아주고서야 '채권'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처음 제대로 알게 됐다.

1. “너한테 하나만 부탁하면 안 돼?”

서른이 막 된 겨울이었다.
첫사랑 지은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6년 만의 연락이었다.

“나 너한텐 이런 말 절대 안 하려고 했는데... 나 지금 너무 급해. 너한테 하나만 부탁하면 안 돼?”

나는 그 말 한마디에 무너졌다.
대학 시절, 그녀는 늘 나보다 한 발 앞서 있었다. 밝고, 명확하고, 선명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부탁'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처음이었다.

“얼마 필요한데?”

“300만 원... 딱 한 달만 쓰고 갚을게. 진짜야.”

나는 별다른 질문 없이 송금했다.
그게 바로 내가 그녀에게 '채권자'가 된 순간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2. “고마워, 내가 꼭 갚을게”

이체 후, 그녀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카페 한 잔을 샀다.
부채와 감정이 섞인 이상한 공기가 그 자리에 맴돌았다.
지은은 내게 말했다.

“너 진짜 좋은 사람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 그런 것 같아.”

나는 속으로 웃었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갚을 마음은 없지만 미안하다는 의미처럼 들렸다.

“혹시 어디에 써? 그냥 궁금해서...”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카드값...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친구 보증 잘못 서준 거. 진짜 바보 같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나는 그 돈이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사랑은 신용보다 강하다고 생각했으니까.

3. 한 달 뒤, 그리고 또 한 달

첫 달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두 번째 달, 내가 먼저 연락했다.
지은은 “아 미안! 월급 들어오는 대로 바로 보낼게!”라며 가볍게 넘겼다.

그 후, 또다시 침묵.

나는 그녀의 계좌를 보며 깨달았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무담보 무이자 무기한 채권자였다는 걸.

4. 사랑은 대출이었을까, 채권이었을까

회식 자리에서 회계팀 선배에게 우연히 물었다.

“형, 채권이 정확히 뭐에요? 주식이랑 뭐가 달라요?”

“주식은 회사에 투자해서 ‘지분’을 얻는 거고, 채권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거야.
다만 조건이 확실하지 않으면, 그건 그냥 떼이는 거지.”

그 말에 술이 확 깼다.

나는 이자도, 만기일도, 보장도 없는 계약을 맺은 셈이었다.
이자 대신 추억을 기대했고, 만기일 대신 희망을 붙잡았으며, 보장 대신 사랑을 믿었다.

나는 투자가 아니라 소비를 한 거였다. 그마저도 증빙서류 없이.

5. 그래도 연락은 안 끊었다

지은은 결국 연락을 끊지 않았다.
연락은 오지만, 돈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녀의 카톡을 차마 차단하지 못했다.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그건 채권이 아니라 미련이야. 법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선 아직도 "혹시 모른다"는 기대가 남아 있다.

채권이란?

채권이란 돈을 빌려준 사람이 돈을 받을 권리를 말합니다.
정부나 기업, 개인이 발행하며, 이자와 만기일이 명시된 계약입니다.
예: 국채, 회사채, 또는 개인 간 대여금 계약서도 ‘채권 관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