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다들 ‘지렛대’라고 설명했다. 작은 힘으로 큰 걸 들어올릴 수 있다고.
유튜브는 말했고, 블로그는 증명했으며, 강의는 기회를 강조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작은 자본으로 더 많은 돈을 움직일 수 있다면,
기회를 더 크게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나는 작은 돈으로 큰 수익을 내기보다, 작은 실수로 더 큰 손실을 떠안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그게 레버리지였다.
1. 욕심은 처음부터 있었다
2021년, 세상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해였다.
코스피가 3,000을 돌파하고, 너도나도 주식을 시작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삼성전자 80층 탑승자’, ‘테슬라 장기주주’ 같은 농담이 오갔다.
그리고 나는, 뒤늦게 그 흐름에 뛰어들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레버리지 ETF로 하루에 몇 퍼센트 벌었다”는 썸네일을 보여줬다.
한 투자 유튜버가 말하길,
“남들은 한 종목 3% 먹을 때, 저는 하루에 10% 수익 낸 적 있어요.
레버리지를 활용하면 적은 자본으로 빠르게 갈 수 있습니다.”
그 말이 뇌리에 깊게 박혔다.
소액 투자자였던 나는 800만 원짜리 예금 통장을 보며 생각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신용거래 계좌를 만들었다.
2. 빚내서 산 주식은 무겁다
처음 산 종목은 코스닥 2배 ETF였다.
코스닥이 반등할 것이라는 분석 글을 믿고, 하락장에서 저점 매수했다.
그리고 정말로 3일 뒤 반등했다.
수익률은 무려 +12%.
단타로 60만 원을 벌었다.
그때 생각했다.
‘나, 이거 소질 있는데?’
그 후로는 주식이 아니라 ‘기법’을 믿게 됐다.
신용거래, 미수거래, 레버리지 ETF, 심지어 차트 매매까지.
기초도 없이 기술만 익히려 들었다.
내 돈 800만 원에 증권사 신용 600만 원, 총 1,400만 원으로 매수했다.
수익은 두 배, 자신감은 세 배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돈으로 산 주식은 마음이 편했지만,
빌려 산 주식은 떨리기만 했다.
조금만 떨어져도 마음이 불안했고,
오를 때도 ‘지금 팔아야 하나’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3. 하락은 예고 없이 온다
2022년 초,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다.
인플레이션 공포, 금리 인상 예고, 미 연준의 긴축 발표.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요동쳤고,
레버리지 상품은 단순 하락이 아니라 폭락했다.
코스닥 지수가 3% 떨어지자,
내가 들고 있던 ETF는 7% 넘게 하락했다.
하루 만에 100만 원 가까운 손실.
다음 날엔 150만 원이 더 빠졌고,
그다음 날 아침에는 ‘미수 정리 통보’가 문자로 날아왔다.
반대매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증권사가 빌려준 돈을 회수하기 위해
내 보유 종목을 시장가로 강제 매도하는 조치다.
그날 아침 9시, 나는 마우스를 움직이지 못한 채
내 주식이 시장가로 팔려나가는 걸 멍하니 지켜봤다.
4. 지렛대는 방향도 반영한다
레버리지는 방향이 맞으면 훌륭한 도구다.
오르는 종목, 상승장이 지속되는 흐름에선
수익을 두세 배로 키워준다.
하지만 반대 방향이라면?
그건 수익률을 두 배로 키우는 게 아니라, 손실을 두 배로 악화시키는 칼날이 된다.
특히 ETF처럼 변동성이 큰 상품은,
한 번 하락하면 원금 회복까지 두세 배의 상승이 필요하다.
나는 그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리’가 무너지는 순간부터는 투자 판단이 불가능해진다.
차트를 봐도 감정이 먼저 앞서고,
뉴스를 봐도 부정적인 해석만 하게 된다.
레버리지로 투자하면서 무너진 건 계좌만이 아니었다.
내 멘탈, 내 습관, 내 신뢰도 함께 흔들렸다.
5. 돈보다 중요한 걸 잃기 전에
3개월 뒤, 나는 주식 계좌를 닫았다.
신용거래 계좌는 해지했고,
ETF는 모두 정리했다.
그후 한동안 투자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돈보다 중요한 걸 회복하려 했다.
흔들리지 않는 멘탈, 분산의 중요성, 자산을 대하는 태도.
이제 나는 ‘빨리 돈 버는 법’을 검색하지 않는다.
대신, **‘길게 살아남는 방법’**을 생각한다.
적립식으로 ETF를 사고, 자산을 주식, 채권, 현금으로 나누고,
당장 수익이 아니라 손실을 줄이는 쪽에 집중한다.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하나다.
“레버리지는 자격시험이 아니다.
지식과 경험, 계획 없이 쓰면 지렛대가 아니라 부메랑이 된다.”
경제개념 정리: 레버리지란?
레버리지(leverage)는 ‘지렛대’라는 뜻으로,
자기 자본 외에 외부 자금을 빌려 더 큰 자산을 운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예:
- 신용거래: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 매수
- 미수거래: 결제 대금 없이 먼저 주식을 사고, 일정 기간 내 자금 정산
- 레버리지 ETF: 기초 지수의 2~3배 수익률을 추구하는 상장지수펀드
레버리지는 수익을 확대시킬 수 있지만,
손실도 동일한 배율로 커진다는 점에서 고위험 구조이며,
특히 투자 초보자나 감정 조절이 어려운 경우엔 극도로 위험한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