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의 선택을 한다. 하지만 그 선택의 '진짜 비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는 늦은 오후, 카페를 나서는 순간 처음 그걸 깨달았다. 그것이 '기회비용'이라는 이름을 가진 줄은,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1. "오늘 나랑 밥 먹자"
수진에게 연락이 온 건 점심시간이었다.
‘오늘 나랑 밥 먹자.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카톡 알림을 보고 나는 잠시 멈췄다. 어제 밤새 PPT 만들던 기억이 뇌를 스쳤다. 오후 2시에 있는 부장 앞 보고. 입사 3년 만에 처음 혼자 맡은 기획이었다.
그래도 수진이었다.
대학 시절 3년을 함께 보냈고, 졸업 후엔 연락도 끊겼다가 이제야 다시 만난 사이. 우연히 SNS에서 근황을 본 뒤로 두세 번 메시지를 주고받았을 뿐인데, 갑자기 밥을 먹자고 하다니.
나는 ‘그래’라고 보냈고, 점심은 저녁이 되었다.
2. “너 예전 같지가 않아”
홍대의 한 카페.
사람들은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었고, 수진은 거기 앉아 커피잔을 돌리고 있었다.
우리는 밥을 먹고, 걷고, 카페에 앉았다. 아무 이유 없는 하루치 데이트처럼.
“너 예전 같지가 않아. 웃음이 없어졌어.”
수진이 말했다.
나는 웃으려다 말았다. 예전 같지 않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국제 NGO에서 일하고 있었고, 나는 작은 마케팅 회사의 대리였다.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자란 셈이다.
“회사가 그렇게 힘들어?”
“아니, 나한테 주어진 기회가 그렇게 많진 않아서 그래.”
말하고 나서 나 자신도 모르게 멈췄다.
그 말은 곧 내가 지금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핑계처럼 들렸다.
3. 기획서를 포기한 날
시간은 3시 40분.
보고 시간은 2시였고, 전화도 와 있지 않았다.
나는 핸드폰을 꺼뒀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나의 결정이 정당화될까 싶어서였다.
카페를 나서자 햇살이 눈부셨다.
그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서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포기한 그 다른 것의 가치가 기회비용이다.”
대학 시절 경제학 개론 수업에서 교수님이 했던 말이었다.
내가 선택한 건 수진과의 재회였고, 내가 포기한 건 기획서를 발표할 기회, 실적, 그리고 팀장 승진의 첫 발판이었다.
그건 어쩌면 수진보다 더 비싼 선택이었는지도 몰랐다.
4. 기회비용, 감정까지 계산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팀장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 보고 취소됐고, 기획안은 다음 프로젝트로 넘어간다. 몸관리 잘해라."
끝이었다.
기획서를 위해 밤새 자료를 모으고, 스토리라인을 구상하고, 경쟁사 리서치를 했던 그 모든 시간은 기회를 놓침으로써 무의미해졌다.
하지만 수진과의 하루는 어땠을까.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나눈 말들, 가로수길을 걷던 그 침묵, 다신 오지 않을지 모를 그 표정들.
어쩌면 이건 숫자로 셀 수 없는 기회비용이었을지도.
사람은 숫자만으로 살지 않으니까.
5. 우리는 늘 무언가를 포기하고 있다
며칠 뒤, 나는 수진의 SNS에서 그녀가 다시 해외로 떠난다는 글을 보았다.
그 순간 알았다. 그날이 아니었다면, 우린 다시 마주칠 수 없었을 거란 걸.
기회비용이란 결국 포기한 것을 후회할 때마다 떠오르는 그림자 같은 단어다.
나는 기획서를 잃었지만, 그날의 수진은 내 기억 속에 남았다.
지금도 생각한다.
다시 그날로 돌아가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까?
아마, 그랬을 거다.
그것이 후회가 아니라 이해가 되었으니까.
기회비용이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그로 인해 포기한 다른 선택지의 가치를 말합니다.
예: 친구와의 만남을 위해 알바를 포기했다면, 포기한 알바비가 ‘기회비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