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숫자를 싫어했다. 돈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가 아팠고, 복잡한 금융 상품은 무조건 피했다. 그저 열심히 일하고, 월급 받으면 저축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지만, 계속 모르면 결국 비용이 된다. 그게 금융문맹이었다.
1. 적금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20대 중반, 첫 직장에서 받은 월급은 세후 220만 원이었다.
나는 그중 50만 원씩 적금에 넣었다.
은행 직원이 추천한 “안정적인 일반 정기적금”이었다.
이율은 연 1.6%, 세전 기준.
나는 만족했다. 돈을 모은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진 몰랐다.
그 상품이 사실상 물가 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수익률이었다는 걸.
주식은 위험하다고 배웠고, 펀드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부동산은 이미 너무 멀게 느껴졌고, 나는 그저 '절약'이 유일한 재테크라 믿었다.
2. ‘몰라서 손해’를 당한 첫 경험
27살, 지인이 보험 상담을 해주겠다고 했다.
“월 10만 원으로 20년 납입하면, 나중에 연금처럼 받을 수 있어.
게다가 실손 보장도 되고, 해지환급금도 있어.”
‘연금’이라는 말에 혹했고, 설명서에 적힌 ‘납입금 대비 환급률 120%’라는 숫자에 안심했다.
그렇게 나는 보험에 가입했다. 무려 ‘종신보험 + 연금 전환형’ 상품이었다.
그리고 3년 후, 우연히 파이어족 관련 블로그를 보다 충격을 받았다.
내가 가입한 상품이 수수료가 높고, 복리 효과가 거의 없는 저축성 보험이라는 사실을.
게다가 중도 해지 시 원금 손실이 크고, 실제 수익률은 1%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땐 이미 해지하면 손해라며 계속 납입 중이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 상품은 나를 위한 게 아니라, 판매자의 실적을 위한 상품이었다.
3. 금융문맹, 내가 얼마나 몰랐는지 깨달은 순간
29살, 친구가 퇴직연금 투자 방법을 설명해줬다.
나는 DC형인데도 그냥 은행 예금에 넣어두고 있었다.
수익률은 연 1.3%.
반면 그 친구는 S&P500 ETF에 투자해 연평균 8~10%의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넌 퇴직연금으로도 자산을 불릴 수 있는 구조인데 왜 가만히 있어?”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퇴직연금, IRP, ETF, 리밸런싱 같은 단어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놓친 기회가 돈으로 환산되면 수백만 원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고, 나는 스스로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 무지가, 내 돈을 조용히 줄이고 있었던 거였다.
4. 금융문맹은 무지보다 위험하다
처음엔 내가 ‘조심스러운 성격’이라 이렇게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건 조심이 아니라 무지에서 오는 방관이었다.
통장을 쪼개는 방법도, 자산 배분의 기본도,
주택청약통장 하나에도 전략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이런 걸 모르고 산다는 건
길을 모르고 운전하는 것과 같다.
속도는 낼 수 있지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기름만 태우는 삶.
정보는 넘쳐나는 시대지만, 제대로 된 선택은 결국 ‘기초 이해’에서 출발한다.
나는 너무 늦게 출발했고, 그만큼 손해도 컸다.
5. 늦었지만 다시 시작한 나의 금융 공부
30살이 된 후 나는 매주 월요일마다 한 시간씩 ‘돈 공부’를 한다.
유튜브 영상, 책, 뉴스, 블로그, 연금상품 비교사이트까지
하루에 하나씩만 제대로 이해하자고 마음먹었다.
몇 달이 지나자 달라진 점이 생겼다.
보험을 정리하고, IRP를 개설해 ETF로 운용을 시작했다.
예전엔 어려워 보였던 단어들이 이제는 내 통장 속에서 실체로 움직이고 있었다.
돈을 아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는 것.
그게 금융문맹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금융개념 정리: 금융문맹이란?
금융문맹(financial illiteracy)은 금융 용어, 상품, 제도, 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경제적 의사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보험, 대출, 예금, 투자, 연금, 세금 구조 등을 이해하지 못해 손해를 보거나, 위험한 상품을 무비판적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해당된다.
금융문맹은 단순히 공부를 안 한 문제가 아니라,
그대로 둘 경우 평생 재정 손실을 입게 되는 심각한 사회적 리스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