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하우스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확신했다. "이 아파트는 안 사면 손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줄의 절반은 '사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의 호기심이, 누군가의 투기심이, 내 선택을 흔들고 있었다. 그게 바로 가수요였다.
1. 줄을 서는 사람들
2025년 3월, 인천 청라지구의 신축 아파트 모델하우스.
오전 8시부터 줄이 늘기 시작했다.
오후 2시, 나는 그 줄의 127번째 사람이었다.
“이 정도면 진짜 인기 많네요.”
옆에 서 있던 중년 남성이 말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줄이 나에게 주는 정보는 단 하나였다.
‘놓치면 끝이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그 줄의 상당수는 사지 않을 사람들,
혹은 못 사는 사람들이었다는 걸.
2. “여기 오면 정보 좀 얻을 수 있거든요”
내 앞에 있던 두 사람은 20대 중후반으로 보였다.
건설사 직원처럼 보이진 않았고, 투자자 같지도 않았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이렇게 말했다.
“야 여기는 분위기 좋다. 블로그 올리면 조회수 잘 나오겠다.”
“근데 진짜 청약 넣을 거야?”
“아니, 신혼도 아니고 가점도 안 돼.”
그 말을 듣고 나는 멍해졌다.
그렇다면... 왜?
단순했다.
보기 위해, 올리기 위해, 혹은 정보만 얻기 위해.
줄을 선 사람이 다 집을 사려는 건 아니었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에 **‘가수요’**라는 단어가 맴돌기 시작했다.
3. 청약 경쟁률 74대 1
결과는 화려했다.
분양가 5억 8천, 청약 경쟁률은 74.3:1.
언론에서는 “청라신도시, 서울 대체 주거지로 급부상”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나는 탈락했다.
그리고 조금씩 의심이 생겼다.
이 아파트는 진짜 사람들이 ‘필요해서’ 사는 걸까?
아니면 ‘올라갈 것 같아서’ 사는 걸까?
혹은 ‘산다는 분위기’에 휩쓸린 걸까?
4. 가짜 수요가 진짜 수요를 밀어낸다
부동산 카페에서 이런 글을 봤다.
“신혼부부인데, 청약 경쟁률이 너무 높아 계속 미끄러집니다.
다들 진짜로 사려는 건가요?”
댓글 중 한 줄이 인상 깊었다.
“가수요가 진짜 수요를 막는 시대입니다.”
생각해보면, ‘정보 수집’, ‘분위기 참여’, ‘전매 기대’ 같은 이유로
청약을 넣지도, 입주하지도 않을 사람들이 열기를 만드는 구조였다.
그 구조 속에서 나는 뒤처졌다.
실제 거주가 목적이었던 나는,
수요는 있으나 경쟁에 밀리는 진짜 수요자였다.
5. 내 선택을 결정한 건 내가 아니었다
몇 달 뒤, 같은 청라지구에 비슷한 조건의 아파트가 분양됐다.
그때 나는 모델하우스를 찾지 않았다.
줄도 보지 않았고, 커뮤니티도 보지 않았다.
대신, 내 소득과 생활반경, 출퇴근 거리, 아이 계획을 기준으로 판단했다.
이제는 줄을 선 사람보다, 줄을 서게 만든 구조를 먼저 보기로 했다.
가수요란 말은 단순한 숫자 왜곡이 아니다.
그건 사람의 심리를 흔들고, 진짜 필요한 사람이 선택하지 못하게 만드는 유령이다.
나는 그렇게 내 집을 늦춘 이유를 외부 탓이 아니라 내 시선에서 찾기로 했다.
가수요란?
가수요(假需要, speculative demand)는 실제로 구매할 의사가 없거나 구매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겉보기 수요'입니다.
예: 모델하우스 방문, 청약 넣기, 줄서기 등은 많지만 실제 계약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 → 가수요
가수요는 시장을 과열시켜 진짜 수요자의 접근을 막는 문제를 유발합니다.